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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작소

무명 (2025) – "이름 없는 존재들의 이름을 부르다"

by platy 2025. 6. 22.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그 이름, 이제 우리가 말할 차례다.”
– 영화 《무명》 중에서

 

 

 

 

 

 


“그들은 왜 기록되지 않았는가”

2025년 6월 25일, 한국 전쟁기념일에 맞춰 개봉하는 영화 《무명》은 그 제목처럼 ‘이름 없는 사람들’을 향한 기억의 초대장이다. 전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시대를 움직였던 인물들, 이름 대신 숫자로, 혹은 익명으로 남겨졌던 그들의 존재를 영화는 조명한다.

 

《무명》은 국가적 서사의 그림자 속, 역사 교과서에 단 한 줄도 남지 못했던 인물들의 인생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감동을 유도하기보다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영화는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서 관객을 서성이게 만든다.

 

 


줄거리: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된 여정

이야기의 중심에는 은퇴를 앞둔 베테랑 탐사보도 기자 ‘이인호’(설경구)가 있다. 더는 굵직한 기사를 쓸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그에게 편집장이 마지막 기획을 제안한다. 주제는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 마지못해 수락한 이인호는 국가기록원에서 한 장의 흑백사진과 마주한다. 강제징용에 끌려갔다 돌아오지 못한 청년의 초점 없는 눈빛. 그의 흔적을 좇기 시작한 이인호는 점점 더 많은 ‘무명’의 인생에 다가가게 된다.

 

산업화의 기계 아래 깔려 세상을 떠난 노동자, 이름조차 남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 민주화 시위 당시 사라진 여대생, 부정선거에 항거하다 자살로 처리된 공무원까지. 그들은 모두 ‘기록되지 않음’으로 인해 역사에서 지워진 사람들이다. 기자는 그들의 가족, 친구,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해 잊힌 조각들을 복원해나간다.

 

 

 

 

 


설경구의 절제, 김향기의 눈물, 그리고 다채로운 얼굴들

설경구는 냉소적인 베테랑 기자에서 점차 감정의 층위를 드러내는 인물로 변모해간다. 자신의 무력감, 미안함, 그리고 마주한 진실 앞에서의 떨림을 대사보다는 표정과 눈빛으로 표현한다. 그의 연기는 절제되어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와 연민은 무척 깊다.

 

김향기는 실종 여대생의 동생으로 등장해 오랜 시간 가족을 지켜온 고통과 애절함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그녀가 흙먼지를 털며 “우린 기억하고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관객의 심장을 조용히 두드린다.

 

이 외에도 변요한, 조우진, 이엘, 박해수 등이 각기 다른 에피소드 속 인물로 등장하며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사연을 대변한다. 이들의 분량은 짧지만, 단 한 장면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연출: 다큐멘터리적 시선과 서정적 구성

문지훈 감독은 다큐멘터리 출신답게 사실적인 톤과 정제된 감정선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극적인 장면보다 **'간극'**에 집중한다. 대사가 없는 공터, 빈 골목, 먼지가 날리는 서류철 위에 맺힌 손의 떨림. 말보다 묘사가 강한 영화다.

 

특히 마지막 장면, 기자가 무명자의 무덤 앞에서 손수 묘비에 이름을 새기며 “기록은 이름을 만들고, 기억은 사람을 되살린다”고 읊조리는 장면은 잊기 어렵다.

 

음악 또한 영화의 주제를 은은하게 끌어올린다. 이선희가 부른 OST 「흙으로 피어난다」는 끝내 목소리를 내지 못한 이들의 슬픔을 대신 노래한다. 이 곡은 극장 밖에서도 오래 여운을 남긴다.

 

 

 


메시지: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

《무명》은 단지 과거의 비극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기록되지 않는 존재들’에 대한 경고다. 이 사회가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얼마나 쉽게 지워버리는지를 보여준다.

 

사회복지사,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철거민… 그들 역시 현대판 ‘무명’이다. 영화는 과거의 무명자들을 통해 오늘의 무명자들에게 조명을 비추고, 관객이 ‘기억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총평 및 관람 포인트

 

  • 한 줄 평: “그들이 이름을 얻는 순간, 우리는 사람을 기억하기 시작한다.”
  • 포인트 요약:
    • 실화 기반의 감정 절제형 드라마
    • 다큐멘터리적 연출의 긴장감
    • 설경구-김향기 중심의 배우 시너지
    • 강렬한 여운의 엔딩과 실존 인물 나열 크레딧
    • 6월 25일이라는 개봉일의 상징성
  • 관람 추천: 한국 근현대사에 관심 있는 관객, 이름 없는 이들의 삶에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성찰적 관객, 사회적 메시지를 지닌 작품을 선호하는 분들
  • 별점: ★★★★★ (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