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스쳐간다'는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에게❞
2025년 6월 25일, 영화 후레루가 조용히 관객의 마음에 손을 얹는다. 제목 '후레루(ふれる)'는 일본어로 '닿다', '스치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영화는 단순한 만남이나 이별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서로의 삶을 스쳐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아주 미세한 감정의 떨림, 그리고 그 떨림이 만드는 울림을 포착한다.
감독은 이토 사오리, 독립영화계에서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던 <달의 숨> 이후 7년 만의 장편 복귀작이다. 그녀는 이번 영화에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도쿄의 풍경을 배경 삼아, 물리적 접촉이 거의 없는 관계 속에서 정서적 온도가 어떻게 오르내리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마치 차가운 유리창 너머로 누군가를 바라보는 듯한 감각. 후레루는 바로 그 순간을 이야기한다.

줄거리: '닿음'이라는 감정의 편린들
주인공 **미즈키(나가사와 마사미 분)**는 이혼 후 도쿄의 작은 공방에서 일하며 조용히 살아간다. 우연히 길을 잃고 들어온 **소년 하루토(사사키 류세이 분)**와 마주치면서 그녀의 고요한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루토는 말을 거의 하지 않지만, 사진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미즈키는 그런 하루토에게서 자신이 잃어버린 감정의 조각을 발견하게 되고,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의 세계에 '닿게' 된다.
영화는 거창한 사건 없이도 인물 간의 변화를 유려하게 풀어낸다. 한 장의 사진, 커피를 따라주는 손, 말없이 내미는 우산 한 자루, 이 모든 순간들이 이 영화에서는 거대한 감정의 파도처럼 다가온다. 후반부에 미즈키가 하루토에게 말하는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라는 한마디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접촉의 온도’를 함축한 문장이기도 하다.
연출과 미장센: 온도가 보이는 화면
감독 이토 사오리는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정적인 연출과 탁월한 미장센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따뜻한 자연광, 투명한 유리창, 가만히 흔들리는 커튼, 빗소리 등이 감정선과 맞물리며 관객에게 일종의 ‘감각적 체험’을 선사한다. 음악은 <그대에게>로 일본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던 와타나베 요코가 맡아 피아노와 현악 위주의 따뜻하고 섬세한 선율로 감정을 끌어올린다.
특히 ‘스치듯 지나간다’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몇몇 장면은 인상적이다. 서로 마주 앉아 있지만 손끝이 닿지 않는 장면, 스쳐가는 전철 속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등은 말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 침묵으로 말하는 사람들
나가사와 마사미는 이 영화에서 다시금 '정적인 내면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무너져 내리지 않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인물의 감정을 말없이 표현해내는 그녀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상대역인 사사키 류세이는 아직 10대지만 이미 몇몇 단편 영화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그의 '조용한 존재감'은 오히려 극의 중심을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는 이 두 배우 외에도 여러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등장하고 사라진다. 그들은 모두 미묘한 접점에서 서로를 흔들고, 그 흔들림은 이야기의 리듬을 만든다.
관람 포인트: 조용한 감정이 울리는 순간
-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영화
- '사건'이 아닌 '정서'를 중심에 둔 감성 드라마
- 미장센과 사운드, 침묵의 연기까지 일체감 있게 완성
- 인간관계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후레루’는 어떤 의미에서 ‘적막’이라는 감정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영화다. 극적인 반전이나 큰 감정 폭발이 없기에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오히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관객 자신의 감정이다. 스쳐가듯 살아가는 오늘, 그 안에서 진짜 중요한 관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 한 문장 요약
“닿는다는 건, 이해받는다는 것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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